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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상식

이순신 장군 아버지, 어머니, 부인, 첩 이야기

by bb-boulderface 202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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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그들에 대한 자료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난중일기, 선조실록 등에 근거한 사실만을 근거로 알아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

 

이순신 장군 아버지

이정 (1511 ~ 1583)

음서 (고위 관리 친인척에게 과거시험을 생략하고 하급 관직을 주는 제도) 벼슬에 올라 종5품 창신 교위에 이른 인물입니다. 1583년 11월 15일 타계 (임진왜란 발발 전) 후 이순신은 부친의 부고를 50일이나 지난 후에야 접하고 뒤늦게 달려가 3년상을 치룹니다.

사후 1604년에 아들 이순신의 막대한 훈공으로 좌의정에 추증되고 덕연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이순신 장군 어머니

변씨 부인 (1515 ~ 1597)

전라 좌수사에 취임 후 어머니 변씨를 여수 웅천에 모시고 봉양했는데, 현대에도 여수에는 '이순신 자당기거지'라고 해서 변씨가 살던 집이 남아 있습니다. (자당은 상대방의 어머니를 높여부르는 호칭입니다.)

 

어머니도 상당히 강직한 여성이었는데, 《난중일기》를 보면 문안 인사를 하고 떠나는 아들 이순신에게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고 격려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때 이순신은 어머니의 모습을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마음으로 탄식한 빛이 없으셨다"라고 묘사했습니다.

(난중일기 1594년 1월 12일)

 

1597년 이순신이 파직당하고 백의종군을 떠날 때, 변씨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관을 싣고 오다가 병사했는데, 이순신은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도 모자라, 임지로 떠나는 길이라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바로 떠나야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의 이순신이 느낀 애통함은 난중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아들이 의금부에 잡혀갔다는 소식에 놀란 어머니가 연로한 나이에다 건강도 나쁜 몸인데도 아들을 보기 위해 아산까지 직접 오기로 했고 결국 아산에 오기 전 건강이 악화되어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난중일기 1597년 5월 28일"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나가는 중에 아들 울이 종을 보내 "아직 배 소식이 없다."했다. (중략) 조금 있으니 종 순화가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알렸다. 뛰쳐나가 가슴을 두들기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하늘이 캄캄하다. 즉시 갯바위로 달려나가니 이미 배가 와 있었다. 이 애통함을 글로 다 적을 수가 없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3일" 

竭忠於國而罪已至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했으나 죄가 이미 미쳤고
欲孝於親而親亦亡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자 했으나 부모마저 돌아가셨네.
天地安如吾之事乎
세상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랴?
不如 早死也
속히 죽느니만 못하다.

 

 

이순신 장군 부인

방수진

이순신 장군 방수진의 본명은 사실 알려지지 않아 그냥 "방씨"라고 불러졌습니다.

그러다 서간첩(국보 76호)을 연구한 결과 본명이 "방수진"임을 밝혀졌다고 합니다.

 

난중일기에 부인이 병을 앓아서 전란 중 사경을 헤맸다는 기록이 있지만, 1603년 아들 이회가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사직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이순신의 전사 후인 1603년까지는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입니다.

 

**서간첩 : 이순신이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글 **

 

야사 중 방수진의 이야기 1

어린 시절 방씨 집에 도적들이 쳐들어오자 방진이 방문을 열어놓고 앉아 활을 쏘며 저항했고 화살이 다 떨어지자, 방수진이 베틀에 쓰는 대나무 가지 더미를 바닥에 와르르 쏟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버지!! 여기 화살들이 있습니다!!"라고 소리쳐 화살이 많이 남아 있다고 속여서 도적들이 도망갔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야사 중 방수진의 이야기 2 (류성룡의 글 "서애집"에 나온 글)

 사위인 홍비가 체구가 작아서 마음에 차지 않다며 집에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집안 노비들을 거느리고 직접 농사를 지어서 집안을 유지하며, 대단히 성격이 강해서 집안 사람들 중 아무도 그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고 나온다.

 

 

이순신 장군 첩

해주 오씨, 부안 댁

당시 시대상에 따라 이순신도 첩을 두었는데, 난중일기 등 기록에 나오는 첩으로는 '해주 오씨'와 '부안댁'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해주 오씨는 양반가의 서녀로 추정되며, 오씨에게서 서자로 이훈, 이신과 서녀 2명을 낳았고. 부안댁은 상민이나 노비 출신으로 추정되며 자녀가 있다는 기록은 없고, 난중일기에 꿈에서 부안댁이 다른 남자와 불륜하여 자식을 낳았기에 내쫓는 꿈을 꿨다는 기록이 있다.

 

난중일기를 보면 부하나 친지의 여성 가족들이 와서 잤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순신 휘하에서 복무중이던 가족을 찾아 왔다가 그냥 그 집에서 기거 했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님의 부인들도 그 노고가 많았을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무튼 이순신 장군님~~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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